세계적인 사업가들이 여전히 책상 곁에 두는 책이 있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에 쓰인 병법서, 손자병법이에요. 세일즈포스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는 이 책을 통해 싸움보다 전략을 먼저 세우는 법을 배웠다고 밝혔고,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손자병법에 자신의 경영철학을 더해 '손의 제곱병법'이라는 경영훈을 따로 만들기도 했죠.
그런데 이 책이 말하는 가장 압도적인 승리는 뜻밖에도 싸워서 얻는 승리가 아니에요.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전쟁을 다룬 책이 싸우지 말라고 하니 조금 의아하죠. 그런데 이 문장은 요즘 많은 대표님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정확히 맞닿아 있어요.
경쟁사가 할인을 시작하니 우리도 따라서 가격을 내렸어요. 노출이 줄어드는 것 같아 광고비도 조금 더 붙였고요. 그달 매출은 분명 올랐는데, 막상 정산을 해보면 손에 남은 게 없어요. 열심히 싸워 이겼는데도 이긴 것 같지 않은 달.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시죠?
그래서 오늘은 손자의 이 문장을 붙들고 두 가지 질문을 풀어보려 해요. 열심히 싸우는데 왜 남는 게 없을까, 그리고 비즈니스에서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건 정확히 무엇일까. 2,500년 전 병법서의 답을 현대 비즈니스의 언어로 옮긴 이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이긴 두 브랜드까지 함께 살펴볼게요.
Chapter 1. 가격 경쟁, 열심히 싸울수록 남는 게 없는 이유
가격 경쟁이 남는 게 없는 이유는, 상대가 정한 기준 위에서 가장 비싼 방식으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에요.
먼저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싸움부터 들여다볼까요? 경쟁사가 가격을 내리면 우리도 내리고, 경쟁사가 광고를 늘리면 우리도 따라 늘려요. 경쟁사 상세페이지에 장점이 다섯 개 적혀 있으면 우리는 여섯 개를 채워 넣고요. 하나씩 놓고 보면 모두 당연한 대응 같아요. 그런데 이 싸움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어요. 싸움의 기준을 정한 쪽이 우리가 아니라는 것 이에요.
가격으로 붙자고 정한 것도, 광고 물량으로 붙자고 정한 것도 대부분 먼저 자리를 잡은 상대예요. 우리는 상대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상대가 만든 규칙대로 싸우고 있는 셈이죠. 이런 싸움은 이겨도 대가가 커요. 상대보다 조금 더 내어주고, 조금 더 쓴 뒤에야 겨우 이길 수 있으니까요. 다시 손자병법으로 돌아가 볼게요. 사업가들이 굳이 전쟁 책을 붙드는 이유는, 이 책이 누구보다 먼저 싸움의 비용을 따져봤기 때문이에요.
손자병법은 첫 문장부터 무거워요. "전쟁은 나라의 큰일이다. 죽고 사는 땅이며, 존속과 멸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손자는 이기는 기술보다 비용 계산을 앞에 둬요. 군대 하나를 움직이는 데 하루에 천금이 들고, 싸움이 길어지면 나라 살림이 바닥난다고요. 매달 할인과 광고비가 빠져나가는 대표님의 장부와 크게 다르지 않죠.
그 계산 끝에 손자는 전략에 순위를 매겨요. 가장 낮은 전략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에요. 상대가 가장 단단히 대비해둔 곳에 정면으로 부딪히니, 이겨도 남는 게 적고 지면 모든 걸 잃기 때문이죠. 반대로 가장 높은 자리에는 앞서 본 그 문장,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을 올려두었어요. 가장 압도적인 승리는 가장 적게 잃으면서 거두는 승리 라는 거예요. 이제 우리의 싸움을 다시 볼게요. 가격 인하, 광고비 경쟁, 장점 늘리기는 모두 상대가 굳게 지키는 성을 정면으로 치는 일이에요. 열심히 싸울수록 남는 게 없는 건 우리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가장 값비싼 방식으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비즈니스에서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손자가 남긴 이 방향을 현대 비즈니스의 언어로 정리한 이론이 있어요.
Chapter 2.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브랜드 포지셔닝
브랜드 포지셔닝은 고객의 머릿속에서 아무도 서 있지 않은 자리를 먼저 차지하는 일이에요.
포지셔닝이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포지셔닝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경쟁사보다 나은 점 찾기"를 떠올려요. 맛이 더 좋고, 소재가 더 좋고, 배송이 더 빠르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이건 앞에서 본 성 공격과 다르지 않아요. "더 낫다"는 말은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 성립하고, 그 비교의 기준은 대개 시장을 먼저 차지한 브랜드가 만들어둔 것이니까요. 더 나아지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상대가 쌓아올린 성벽 앞에 서게 돼요.
포지셔닝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린 사람은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예요. 두 사람은 1981년 출간한 『포지셔닝』에서 완전히 다른 정의를 내놓았어요. 포지셔닝은 제품에 하는 일이 아니라, 고객의 머릿속에 하는 일 이라는 거예요. 책의 부제부터 '마음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였고, 두 사람은 몇 년 뒤 군사 전략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마케팅에 적용한 『마케팅 전쟁』까지 펴내요. 손자가 말한 싸움의 원리가 현대 마케팅 이론으로 이어진 셈이죠.
리스와 트라우트는 고객의 머릿속을 '사다리'에 빗댔어요. 사람들은 카테고리마다 브랜드 순위가 매겨진 사다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요. 콜라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 렌터카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처럼요. 그런데 이 사다리의 칸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보통 두세 개 브랜드를 꼽고 나면 기억이 끊기죠. 그리고 가장 위 칸은 대부분 그 카테고리에 가장 먼저 자리 잡은 브랜드의 몫이에요. 한번 굳어진 순서는 쉽게 바뀌지 않고요.
이 사다리를 떠올려보면 Chapter 1의 질문에 대한 답이 보여요. 1등이 아닌 브랜드가 1등과 같은 기준으로 "우리가 더 낫다"고 외치는 건, 고객에게 머릿속 사다리의 순서를 바꿔달라고 설득하는 일이에요. 이미 굳은 순서를 뒤집으려니 그만큼 더 깎아주고, 그만큼 더 써야 하는 거죠. 열심히 싸울수록 남는 게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그래서 리스와 트라우트는 1등이 될 수 없다면 다른 브랜드가 차지하지 않은 빈자리를 찾으라고 말해요. 같은 사다리를 오르려 애쓰기보다, 우리가 맨 위에 설 수 있는 자리를 찾으라는 거예요. 그 자리에는 애초에 맞붙을 상대가 없어요. 손자가 말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브랜드의 언어로 옮기면, 이것이 브랜드 포지셔닝이에요.
빈자리를 찾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예요. 하나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아직 아무도 내세우지 않은 기준을 찾는 방법이에요. 모두가 "프리미엄"을 외칠 때는 "가장 빨리 받는" 자리가 비어 있을 수 있고, 모두가 "가성비"를 외칠 때는 "선물하기 좋은" 자리가 비어 있을 수 있어요. 다른 하나는 이미 맨 위에 있는 1등을 오히려 기준점으로 빌려 쓰는 방법이에요. 1등을 이기려 하지 않고, 1등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를 정의하는 거죠. 두 방법 모두 다음 챕터의 사례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방법
핵심
예시
비어 있는 기준 찾기
같은 카테고리에서 아직 아무도 내세우지 않은 기준을 선점
모두가 "프리미엄"일 때 "가장 빨리 받는" 브랜드
1등을 기준점으로 빌리기
1등을 이기려 하지 않고, 1등과의 관계로 우리를 정의
에이비스 "We Try Harder", 세븐업 "Uncola"
여기서 우리 브랜드를 한번 비춰볼까요? 대표님들께 브랜드 소개를 부탁드리면 이런 답이 자주 돌아와요.
"저희는 품질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고, 응대도 친절해요."
좋은 말이에요. 그런데 사다리의 관점으로 보면 문제가 드러나요. 품질, 가격, 친절은 그 카테고리의 모든 브랜드가 이미 겨루고 있는 기준이에요. 이 문장은 우리를 새로운 칸에 세우지 못하고, 남들과 같은 사다리에서 순위 다툼을 하겠다는 선언이 되고 말아요. 고객의 머릿속에 "아, 그 브랜드는 ○○하는 곳"으로 떠오를 자리가 없는 거죠. 우리 브랜드를 한 문장으로 각인시키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엘리베이터 피치, 30초 안에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드는 법을 함께 읽어보세요.
Chapter 3. 브랜드 포지셔닝 사례, 싸우지 않고 이긴 두 브랜드
에이비스와 세븐업은 1등을 이기려 하지 않고, 1등 옆에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어 이겼어요.
이 개념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두 브랜드의 포지셔닝 사례로 확인해볼게요.
2등이라고 먼저 말한 렌터카, 에이비스
1960년대 초 미국 렌터카 시장의 사다리 꼭대기에는 허츠가 있었어요. 에이비스는 2위였지만, 1위와의 격차를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 있었죠. 이럴 때 흔히 하는 선택은 "우리가 더 좋다"고 말하는 거예요. 더 좋은 차, 더 좋은 서비스, 더 좋은 가격을 앞세워 허츠의 성을 치는 거죠. 1962년 에이비스가 택한 길은 정반대였어요. "우리는 더 열심히 합니다(We Try Harder)"라는 캠페인으로, 자신이 2등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먼저 꺼냈어요. 2등이니까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죠. 광고에는 깨끗한 재떨이, 잘 정비된 차처럼 더 열심히 하는 구체적인 장면을 담았고, 허츠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어요.
이 캠페인이 영리했던 건, 고객 머릿속에 이미 굳게 자리 잡은 1등을 무너뜨리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대신 1등을 기준점으로 빌려와 "그 바로 옆에서 더 애쓰는 브랜드" 라는 새로운 칸을 만들었죠. 캠페인 이후 허츠와의 격차는 좁혀지기 시작했고, "We Try Harder"는 이후 50년 가까이 에이비스를 대표하는 문장으로 남았어요.
콜라와 싸우지 않은 음료, 세븐업
두 번째는 세븐업이에요. 1960년대 후반, 세븐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소비자들은 세븐업을 칵테일 믹서나 속이 더부룩할 때 찾는 음료 정도로 생각했죠. 회사는 세븐업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탄산음료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 사다리의 꼭대기는 코카콜라와 펩시가 단단히 지키고 있었어요. 사실상 탄산음료 사다리가 곧 콜라 사다리였던 거예요. 이때 세븐업이 "콜라보다 더 맛있다"고 외쳤다면, 두 거인이 지키는 성벽 앞에 서는 꼴이 됐을 거예요. 광고대행사 J. 월터 톰슨이 고른 길은 그 반대였어요. 경쟁 음료와 닮은 점 대신 다른 점에 집중했고, 그걸 한 단어로 압축했죠. '언콜라(Uncola)', 콜라가 아닌 음료.
에이비스처럼 세븐업도 1등을 무너뜨리려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고객 머릿속에서 가장 단단한 '콜라'를 기준점으로 빌려와, 바로 그 옆에 "콜라가 아닌 것"이라는 새 칸을 세웠어요. 콜라를 마시던 사람이 뭔가 다른 걸 원할 때, 떠올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름이 된 거예요. 캠페인은 젊은 층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이후 몇 년 사이 매출이 30% 가까이 늘었다는 기록도 전해져요. 리스와 트라우트 역시 『포지셔닝』에서 이 사례를 대표적인 성공으로 소개했고요.
두 브랜드가 하지 않은 것
두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분명해요. 에이비스도 세븐업도 1등을 이기려 하지 않았어요. 1등과 같은 기준으로 "더 낫다"고 말하지도 않았고요. 대신 고객 머릿속의 사다리를 정확히 읽어내고, 아직 아무도 서 있지 않은 칸을 먼저 차지했어요.
구분
에이비스
세븐업
사다리 맨 위
허츠
코카콜라·펩시
흔한 선택
"우리가 더 좋다"
"콜라보다 더 맛있다"
실제 선택
2등임을 먼저 인정 (We Try Harder)
콜라가 아님을 선언 (Uncola)
차지한 자리
1등 옆에서 더 애쓰는 브랜드
콜라 대신 떠올리는 유일한 음료
에이비스는 허츠를 이긴 게 아니고, 세븐업은 콜라를 이긴 게 아니에요. 그들과 같은 성 앞에 서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는 애초에 싸울 이유가 없었어요.
Outro. 다음 할인 전에, 먼저 사다리를 그려보세요
다음 할인을 결정하기 전에, 고객 머릿속 사다리에서 우리 브랜드의 자리부터 확인해야 해요.
오늘 이야기를 한 문단으로 정리해볼게요. 열심히 싸우는데 남는 게 없는 건, 상대가 정한 기준 위에서 가장 비싼 방식으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에요. 손자는 그런 싸움을 가장 낮은 전략이라 불렀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선으로 꼽았어요. 비즈니스에서 그 방법이 바로 브랜드 포지셔닝이에요. 고객 머릿속 사다리에서 순위 다툼을 하는 대신, 아무도 서 있지 않은 자리를 먼저 차지하는 것. 에이비스와 세븐업은 1등을 꺾지 않고, 1등 옆에 자기 자리를 만들어 이겼어요.
처음 장면으로 돌아가 볼게요. 따라 내린 가격, 조금씩 불어난 광고비, 남은 게 없던 정산. 다음 할인을 결정하기 전에, 질문 하나를 먼저 던져보셨으면 해요.
"고객의 머릿속에서 우리 브랜드는 어느 사다리의 몇 번째 칸에 서 있을까?"
남들과 같은 사다리의 아래 칸에 있다면, 이기는 방법보다 설 자리를 바꾸는 방법부터 찾아봐야 할 때예요. 우리 브랜드의 방향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고 싶다면 단 3가지 질문으로 완성되는 브랜드 전략이 출발점이 되어줄 거예요.
물론 빈자리를 찾는 건 시작일 뿐이에요. 그 자리를 고객이 기억하게 하고,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고, 경쟁자가 넘보지 못할 만큼 단단히 지켜내는 일까지. 자리를 지키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브랜드 일관성, 다른 얼굴로 같은 브랜드가 되는 법에서 더 자세히 다뤘어요.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우리는 브랜딩이라고 불러요.
손자는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겨놓고 싸움을 구한다(勝兵先勝而後求戰)"고 했어요.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이겨 있는 상태, 할인하지 않아도 고객이 먼저 찾아오는 상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그것이 가장 압도적인 브랜드 전략이에요.
FAQ
Q. 브랜드 포지셔닝이란 무엇인가요?
A. 브랜드 포지셔닝은 고객의 머릿속에서 우리 브랜드가 차지할 고유한 자리를 정하는 일이에요. 제품의 장점을 늘리기보다, 고객이 "그 브랜드는 ○○하는 곳"이라고 떠올리게 만드는 데 초점이 있어요.
Q. 1등 브랜드가 아니라면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하나요?
A. 1등과 같은 기준으로 "더 낫다"고 겨루기보다, 아직 아무도 내세우지 않은 기준을 찾거나 1등을 기준점 삼아 그 옆에 새로운 자리를 만드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어요.
Q. 가격 할인 경쟁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A. 고객 머릿속에서 우리 브랜드가 어느 사다리의 몇 번째 칸에 있는지부터 점검해보세요. 같은 기준 위에서 순위 다툼을 하고 있다면, 할인보다 설 자리를 다시 정하는 일이 먼저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