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대, 홍대, 성수동. 서울을 대표하는 상권들이에요. 그런데 서울엔 이 이름들 뒤에 아직 아무도 제대로 꺼내놓지 않은 수십 개의 골목이 더 있어요. 50년째 자리를 지키는 동네 빵집, 젊은 창작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구석진 상권, 오래된 가게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쌓인 작은 길목들. 충분히 특별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곳들이죠.
서울시의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사업'은 바로 그 골목들을 세상에 내놓는 프로젝트예요. 디블러는 이 사업에서 회기랑길, 상봉 먹자골목, 성북동길, 사일구로 등 여러 상권 브랜딩을 이미 함께해왔어요. 그리고 이번엔 조금 다른 의뢰가 들어왔죠. 개별 상권이 아니라, 이 모든 상권을 하나로 엮는 통합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볼게요.
Chapter 1. 프로젝트의 시작
Q. 서울시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기분 좋은 소식이 먼저 들려왔어요. 서울시 내부에서 이전 상권 브랜딩 결과물들이 화제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엔 수준이 다르다", "감각 있는 곳이 붙었다"는 이야기들이 돌면서 이번 제안으로 이어진 거예요. 어떤 스펙이나 포트폴리오보다 결과물 자체가 신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가장 의미 있었어요.
더 기뻤던 건 작업이 끝난 뒤에도 이어진 연락들이었어요. 성북동은 캐릭터 추가 개발을, 상봉은 5개 점포 BX 경험 고도화를, 중랑구는 외부 오브제와 콘텐츠 개발을 다시 맡겨주셨거든요. 먼저 다시 찾아오는 클라이언트는, 어떤 수치보다 정직한 만족도의 증거예요. 그 흐름 안에서 이번 통합 브랜드 프로젝트 제안을 자연스럽게 받게 됐어요.
Q. 기존 상권 브랜딩과는 접근이 어떻게 달랐나요?
출발점이 전혀 달랐어요. 상권 브랜딩은 그 장소가 가진 고유한 정체성을 꺼내는 일이에요. 토박이 이야기, 역사, 새로운 방문객을 끌어오는 방법까지 상권 자체가 중심이거든요. 이번엔 그게 아니었어요. 그 상권들을 만들어내는 정책 사업 자체에 브랜드를 씌우는 작업이었으니까요.
"우리가 이 일을 왜 하는가, 무엇을 향해 가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훨씬 더 중요했어요. 타겟도 완전히 달라졌고요. 상권 브랜딩은 그 상권을 찾을 특정 고객을 좁혀야 하지만, 이번엔 서울 전 시민이 대상이잖아요. 이 가치를 어떤 언어와 비주얼로 풀어낼지에 훨씬 더 집중해야 했어요.
구분
상권 브랜딩
정책사업 브랜딩
중심 대상
개별 상권의 에센스
사업의 가치와 철학
타겟
상권의 특정 고객군
서울 시민 전체
핵심 과제
차별화된 상권 정체성 구축
명확한 퍼포스와 언어 정의
비주얼 방향
상권 고유의 감성 표현
어디에도 어울리는 범용성
여기에 이 프로젝트만의 독특한 맥락이 있었어요. 통합 CI는 원래 개별 상권 브랜딩이 시작되기 전에 기준을 세우는 게 맞는 순서예요. 그런데 현실은 반대였어요. 각 상권이 먼저 완성된 뒤에야 통합 CI 작업이 시작된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전략의 출발점으로 삼았어요. "처음부터 우리가 기준을 잡았다면, 어떤 이름과 비주얼이 나왔을까?"
6개월 가까이 상권 브랜딩을 해오면서 이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미 몸으로 익혀둔 상태였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광범위한 정보 수집보다는, 내부 관계자들이 이 정책 사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죠. 담당자부터 운영진, 각 상권 관계자들까지 모든 분들과 심층 대면 인터뷰를 빠짐없이 진행했어요.
인터뷰 내내 파고들었던 건 한 가지였어요. 브랜딩은 결과물을 만들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거거든요. 완성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쓰이고, 진짜 상권의 타이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까지 어떻게 해낼 것인가. 그 부분을 관계자분들과 함께 깊이 들여다봤어요.
Q. 조사를 통해 발견한 핵심 과제는 무엇이었나요?
상권 브랜딩에서 가장 먼저 쌓아야 할 건 '네임 밸류'예요. 블루리본을 예로 들면, 그 이름 자체에 무게가 실려 있으니까 식당들이 인증을 원하는 거잖아요. 로컬로서울도 마찬가지예요. 예쁜 로고보다 이름 자체가 신뢰가 되는 것,그게 먼저였어요.
IF 어워드처럼 생태계의 허브이자 플랫폼으로서, 상권들은 갖고 싶어 하고 소비자들은 따라가고 싶은 채널. "이 시기에 가볼 만한 상권 세 곳은 여기예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큐레이터 역할이 이 브랜드의 퍼포스가 됐어요. 태그라인도 거기서 도출됐어요. "골목에서 발견하는 진짜 서울."
Chapter 3. '로컬로서울', 이름의 탄생
Q. 네이밍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처음 전제가 흥미로웠어요. '로컬이라는 단어는 쓰지 말자'는 거였거든요. 로컬이라고 하면 지방 특산물이나 특정 랜드마크가 먼저 떠오르고, 서울 안에서의 로컬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좁아 보인다는 우려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초반엔 다양한 후보들이 쏟아졌어요. 서울의 소울을 담는다는 방향으로 소울풀, 소울라벨, 설렉션 같은 이름이 나왔고, 직관적인 표현으로는 서울 온동네, 서울리, 서울림도 등장했어요. '서울 온동네'는 꽤 매력적인 후보였어요. 서울의 모든 동네를 에너지로 잇는다는 뜻과, 서울에 빛을 켠다는 이중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중간에 방향이 바뀌었어요. 서울 키워드는 살리되, 로컬 브랜드 육성사업이라는 맥락도 이름 안에서 읽혀야 한다는 피드백이 들어온 거예요. 처음 전제와 반대되는 요구였어요. 그때부터 단어들을 이리저리 붙여보면서 새로운 조합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로컬로'가 불쑥 튀어나온 거예요.
결정적인 이유는 이름이 품은 의미의 밀도였어요. 로컬로(路)서울. 골목과 골목을 잇는 길(路)의 이미지, '로컬의 길로 걷는 서울'이라는 방향성, 그리고 "로컬로 오세요"라는 따뜻한 초대까지 하나의 이름에 담겼어요.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로컬로'인 회문 구조 덕분에 기억하기도 쉽고요. 의미와 리듬과 인지력이 한꺼번에 맞아떨어지는 네이밍은 흔하지 않아요.
방향을 잡는 핵심 단어는 통일감이 아니라 '연결' 이었어요. 골목과 골목을 잇고, 상권과 상권을 엮고, 흩어진 것들을 서울의 로컬이라는 하나의 지도로 모아내는 것. 그게 이 브랜드가 존재하는 이유니까요.
그 전제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절대 튀지 않는다"였어요. 회기랑길 앞에도, 상봉 먹자골목 앞에도, 앞으로 생길 5기·6기·7기 상권들 앞에도 모두 붙어야 하는 이름이니까요. 백년가게나 블루리본처럼 어떤 이름 앞에 붙어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인증 마크의 역할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브랜드의 개성은 아주 작은 디테일 안에만 담았어요. 로고 타이포그래피의 리을(ㄹ) 자에 골목길의 구불구불한 형상을 라운딩으로 녹여넣고, 글자들 사이에서 컬러가 밖으로 뻗어나가는 연속성을 표현했어요. 컬러는 단색 대신 풀컬러를 선택했어요. 모든 색과 모든 길을 품는다는 의미예요. 키비주얼은 지하철·버스 노선도처럼 여러 컬러가 합쳐지면서 하나의 상권 노선도를 그려내는 방식으로 완성됐어요.
Q.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착수보고회가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정책사업 브랜딩은 이해관계자가 유독 많아요. 이전 상권 브랜딩들을 진행하면서 절실히 느꼈거든요. 아무리 좋은 방향을 제시해도 다양한 사람들의 수용 과정에서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착수보고회를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준비해서 갔어요.
정책사업에 브랜딩을 씌운다는 개념 자체가 낯선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포르투갈 포르투 도시 브랜딩이나 관광재단 프로젝트처럼, 무형의 서비스와 정책이 브랜딩을 만났을 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사례로 풀어드렸어요. 지금까지 해온 작업과 앞으로 가려는 방향을 하나씩 짚으면서 설명했죠.
그 자리에서 담당자분이 건넨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디블러는 굉장히 지혜롭네요." 능력보다 깊은 의미가 담긴 말이었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지, 오해가 생기기 전에 누구와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었거든요. 그 한 마디가 착수보고회의 긴장을 풀고,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 창을 여는 계기가 됐어요.
OUTRO. 로컬로서울이 남긴 것
Q. 로컬로서울이 앞으로 어떤 브랜드가 되길 바라시나요?
IF 어워드나 백년가게처럼 이름 자체가 힘이 되는 브랜드가 됐으면 해요. 상권은 그 이름을 갖고 싶어 하고, 소비자는 그 이름이 붙은 곳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 백년가게 스티커가 붙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한번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로컬로서울 로고가 각 상권 입구의 서브 간판에 걸릴 때, 그게 진짜 갖고 싶은 인증 마크로 자리잡는 것이 목표예요.
건대, 홍대, 성수동은 이미 모두가 알아요. 하지만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골목 하나쯤은 로컬로서울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게 이 브랜드의 진짜 존재 이유예요. "로컬로서울이 소개하는 곳은 믿고 간다"는 신뢰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 그 과정 자체가 브랜딩이에요.
브랜드를 넘겨줄 때 아이를 보내는 부모 같은 마음이었다고 해요. 최종 보고에서 담당자분이 "이제 남은 건 이걸 정말 잘 활용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셨는데, 그 한 마디가 모든 수고를 보람으로 바꿔줬어요.
돌아보면 이 프로젝트는 디블러에게도 단단한 자산을 남겼어요. 모든 이해관계자와의 심층 인터뷰, 현장에서 직접 체화한 감도, 브랜딩이 낯선 분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프레젠테이션 역량까지. 브랜딩은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누군가가 그 이름을 경험하고, 기억하고, 다시 찾고, 마침내 믿게 되는 과정이 쌓일 때 비로소 브랜드가 완성되거든요.
서울 어딘가의 골목에서, 로컬로서울 현판을 발견한 누군가가 "여기 한번 들어가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어요.
FAQ
Q. 상권 브랜딩과 정책사업 브랜딩은 어떻게 다른가요?
상권 브랜딩은 특정 장소의 정체성과 고객을 좁히는 작업이에요. 정책사업 브랜딩은 사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을 더 넓은 대중에게 전달하는 작업으로, 명확한 퍼포스 정의와 어디에나 어울리는 범용성 있는 비주얼 시스템이 핵심이에요.
Q. 로컬로서울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로컬로(路)서울은 '로컬의 길로 걷는 서울'이라는 방향성과 "로컬로 오세요"라는 초대의 의미를 동시에 담은 이름이에요.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로컬로'가 되는 회문 구조로, 의미·리듬·기억 용이성을 한꺼번에 잡은 네이밍 케이스예요.
Q. 상권 브랜딩에서 네임 밸류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상권 브랜딩의 목표는 예쁜 로고 완성이 아니에요. 브랜드 이름 자체가 신뢰의 인증 마크가 되어야 해요. 이름에 무게가 쌓일 때 상권은 그 이름을 갖고 싶어 하고, 소비자는 그 이름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