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알림이 울리는 시대에 '힐링'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포화 상태가 됐어요. 카페, 펜션, 명상 앱까지, 힐링을 내건 공간과 상품이 넘쳐나지만 대부분은 무언가를 더해주는 방식이에요. 새로운 자극, 새로운 경험, SNS에 올릴 새로운 순간. 그런데 번아웃에서 진짜로 회복하려면 더하는 게 아니라 빼야 한다면 어떨까요?
(재)해남문화관광재단은 바로 그 빈자리를 짚었어요. '채워주는 힐링'이 넘치는 시장에서 '덜어내는 비움'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 그 통찰이 해멍 프로젝트의 출발이었어요. 10년 넘게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온 브랜딩 에이전시 디블러는, 해남DMO가 처음으로 내거는 깃발 브랜드의 정체성을 처음부터 설계하는 작업을 맡았어요. 단순한 로고 제작이 아니라, 해남이라는 지역이 세계적인 '비움의 목적지'로 자리잡을 수 있는 브랜드 언어를 만드는 일이었죠. 이 로컬 브랜딩 프로젝트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볼게요. 브랜딩의 언어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더 궁금하다면,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힘 도 함께 참고해 보세요.
Chapter 1. 해멍 프로젝트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Q. 해멍 프로젝트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해멍 프로젝트는 한국 최남단 해남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힐링 경험 브랜드예요. 영문명은 'Healing-HAE in Haenam'. 영어로는 "해남에 힐링 HAE가 있다"가 되고, 한국어로 읽으면 "해남에서 힐링해"라는 의미가 동시에 살아있는 이중 구조예요. 브랜드명 '해멍'에는 두 가지 의미가 겹쳐 있어요. '해'는 바다(海)와 태양을 동시에 품고, '멍'은 멍때리기에서 따왔죠. 해남이라는 지역의 자연 자원과 멍때리기라는 행위의 본질을, 한 음절씩 압축해 합친 이름이에요. 단어 하나에 두 가지 콘셉트가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다는 점이, 디블러가 이 브랜드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지점이었어요.
해멍이 약속하는 건 단순한 휴식 그 이상이에요. 우리나라의 끝, 더 이상 갈 곳 없는 그 자리에서 맞이하는 자연스러운 멈춤. 바다와 태양이 만나는 광활한 공간에서 느끼는 해방감. 그리고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리셋의 감각. 슬로건 "땅끝에서 나를 마주하다"는 그 핵심 경험을 한 문장에 담고 있어요.
Q. 해멍 프로젝트는 왜 만들어졌나요?
해멍 프로젝트는 해남이라는 지역이 오래 안고 있던 문제에서 출발했어요. 자연 자원만 놓고 보면 해남은 분명 풍부한 곳이에요. 그런데 그 자원을 활용한 브랜드 콘텐츠는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특히 사람들에게 정서적 연결을 만들어줄 브랜드 언어가 거의 없는 상태였어요. 해남에 찾아갈 이유를 설득해줄 단어 하나, 이미지 하나가 없었던 거죠.
해남문화관광재단은 여기서 새로운 접근을 선택했어요. 자연 자원을 직접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그 자원이 사람에게 주는 정서적 경험을 브랜드로 만들자는 것. 자연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주는 감정을 브랜드화하자는 발상 이었죠.
디블러가 받은 의뢰는 단순한 로고 작업이 아니었어요. 신사업이 시작되는데 브랜드 정체성이 없고, 마케팅을 하려 해도 받쳐줄 콘텐츠가 없는 상태에서, 해남DMO 최초의 깃발 브랜드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일. 게다가 향후 '해' 시리즈로 확장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어요. 첫 단추가 이후 모든 후속 브랜드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책임감이 큰 로컬 브랜딩 프로젝트였죠.
Q. 해멍 프로젝트의 핵심 타겟은 어떻게 정의했나요?
타겟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디블러는 예상 밖의 발견을 했어요. 처음에는 멍때리기, 캐주얼한 톤, 인스타그래머블한 풍경이라는 키워드를 보고 20~30대 젊은 층을 핵심 타겟으로 잡을 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해남문화관광재단은 30~50대 중장년층을 핵심 타겟으로, 20~30대를 잠재 타겟 으로 설정하고 있었어요.
핵심 타겟인 30~50대의 특징은 분명해요. 경제력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소비를 추구하고, 육아나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진정한 휴식이 절실한 분들이에요. 이분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화려한 액티비티가 아니에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 SNS 사진이 아닌 자기 자신을 되찾는 경험이거든요.
20~30대 잠재 타겟도 결이 다를 뿐 갈망하는 것의 본질은 같아요. 빠듯한 일상,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에 대한 갈증. 두 그룹이 공유하는 그 감각이 이후 모든 디자인 결정의 기준이 됐어요. 화려하지 않은 색감, 너무 트렌디하지 않은 타이포, 과하게 꾸미지 않은 키비주얼. 모든 시각 요소가 '비움'이라는 정서를 향해 정렬되도록요.
Q. 경쟁 관광지와 어떻게 차별화했나요?
해멍의 차별적 가치는 경쟁 분석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어요. 국내에 힐링을 표방하는 관광지는 많지만, 각각이 약속하는 경험의 결은 전혀 달라요.
관광지
힐링 유형
핵심 경험
해멍과의 차이
서울 한강
도시 속 기분 전환
치킨·자전거 등 액티비티 중심
일시적 전환 → 해멍은 근본적 정화
제주도
프리미엄 힐링
완성도 높은 휴식 패키지
비용 부담·과시 중심 → 해멍은 내면의 치유
평창
활동적 자연 힐링
산악 액티비티 + 계절 자연경관
활동을 통한 휴식 → 해멍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자체가 휴식
해멍
내면의 치유
비움·자기 마주함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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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석을 통해 도출한 해멍의 핵심 가치는 세 가지예요.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허락, 억지로 힐링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비워지는 경험, 그리고 해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 브랜드 페르소나도 이 가치에 맞춰 설정됐어요.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라고 다정하게 말 걸어오는, 친구 같은 브랜드인 거죠.
Chapter 2.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갔나요?
Q. 비주얼 콘셉트는 어떻게 설정했나요?
비주얼 콘셉트를 잡는 단계에서 디블러가 가장 먼저 한 건 콘셉트 매핑이에요. 모든 BI 작업에서 빠뜨리지 않는 단계인데요, 가로축을 동적(Dynamic)에서 정적(Static)으로, 세로축을 부드러운(Soft)에서 딱딱한(Hard)으로 놓고 다양한 형용사 그룹을 흩뿌린 다음, 해당 브랜드가 위치해야 할 영역을 표시하는 작업이에요.
해멍의 경우 디블러가 짚은 영역은 '맑은'과 '내츄럴한'이 겹치는 지점이었어요. 강하거나 역동적이지 않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결. 만약 '경쾌한'이나 '다이나믹한' 쪽으로 갔다면 해멍은 액티비티 브랜드가 됐을 거고, '우아한'이나 '고상한' 쪽으로 갔다면 진입장벽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됐겠죠. 두 방향 모두 해멍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어요.
이 매핑 결과를 바탕으로 상상한 해멍의 시각적 캐릭터는, 답을 알려주는 선생이 아니라 옆에 조용히 앉아주는 친구. 안내하는 가이드가 아니라 같이 멍때려주는 동행자였어요. 이 캐릭터가 시각 언어로 옮겨졌을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게 시안 작업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됐어요.
키비주얼이 브랜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더 깊이 살펴보고 싶다면, 브랜드 키비주얼의 이해.01 을 참고해 보세요.
Q. 언어자산은 어떻게 구체화됐나요?
비주얼보다 먼저 손을 댄 건 사실 언어자산이었어요. 슬로건과 스토리텔링이 시각보다 먼저 잡혀야, 그 결을 따라 시각이 따라올 수 있거든요. 가장 먼저 만든 건 국문 슬로건 "땅끝에서 나를 마주하다"였어요. 여러 후보를 검토하면서 하나의 기준을 세웠어요. 슬로건이 '비우다'라는 동사로만 끝나면 안 된다는 것. 비움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거든요. 비워낸 자리에서 진짜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 그게 해멍이 약속하는 경험의 본질이에요. 그래서 '마주하다'로 끝나는 슬로건을 선택했어요.
영문 슬로건은 "Healing-HAE in Haenam"으로 정했어요. 한국어로 읽으면 "해남에서 힐링해"가 되는 이중 구조로, 외국인 관광객까지 염두에 둔 해남DMO의 방향에 맞게 두 언어가 동시에 살아있는 형태로 설계됐어요.
캐치프레이즈는 다섯 가지를 함께 운영하기로 했어요. SNS, 굿즈, 포스터, 안내 사인은 각자 다른 톤과 길이를 요구하거든요. 하나의 슬로건만 있으면 모든 채널에서 같은 말만 반복되니까, 다섯 가지를 미리 만들어두고 채널과 상황에 맞게 골라 쓸 수 있도록 했어요. 브랜드 스토리텔링 "끝에서 만나는 시작"도 별도로 작업해서 영문판 'The Beginning Found at the End'까지 함께 준비했어요.
Q. BI 개발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됐나요?
BI 개발 과정은 세 가지 완전히 다른 시안에서 시작됐어요. 같은 '비움'이라는 정서를 풀어내는 데도 시각 언어로 옮기는 길은 여러 갈래거든요.
첫 번째 시안 은 점선이 만드는 간격과 템포를 콘셉트로 했어요. 평체로 시원하게 펼친 타이포에 해와 바다를 모티브로 한 미니멀한 라인 포인트를 더한 방향이었어요. 띄엄띄엄 이어지는 점선이 하나의 형태를 완성해나가는 방식으로, 비워내는 순간이 다음을 그려나가기 위한 준비의 과정이라는 메시지를 담았죠.
두 번째 시안 은 굵고 단순한 손글씨로 출발했어요. 핵심은 '멍' 글자의 'ㅁ' 안에 길게 늘인 빈 사각형을 넣은 것. 멍때리기의 본질인 '비어 있음'을, 어설픈 메타포가 아니라 글자 안에 직접 구현한 시각 언어였어요. 별다른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었죠.
세 번째 시안 은 반듯한 평체 타이포를 기반으로, 획 곳곳에 둥글게 휘어지는 포인트를 더해 너무 차갑지 않은 캐주얼함을 담아냈어요. 첫 번째 시안의 미니멀함과 두 번째 시안의 위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중간 지점이었어요.
Q. 어떤 시안이 최종 채택됐나요?
결과적으로 두 번째 시안이 채택됐어요. 클라이언트의 반응이 가장 빠르게 모인 쪽이었는데, 특히 'ㅁ' 안에 자리잡은 빈 공간 디테일이 핵심 결정 포인트였어요. 멍때리기를 글자 안에 그대로 옮겨놓은 그 시각 언어가, 해남DMO가 그리던 브랜드의 결과 정확히 맞아떨어진 순간이었죠.
채택 이후 디블러는 키비주얼 시스템을 더 깊이 디벨롭했어요. '멍때리기'라는 추상적 행위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시각 언어로 옮기기 위해, 3단계 시각화 시스템 을 설계했어요.
단계
시각 표현
의미
1단계
선명한 해남 실제 풍경
현실: 바다와 대지가 만나는 구체적 장면
2단계
단순화된 색면 구성
추상화: 하늘·바다·풀이 각각의 색면으로 분리
3단계
블러 처리된 추상적 형태
비움: 모든 경계가 흐릿해진 완전한 멍 상태
이 세 단계를 나란히 놓으면,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시간 축이 만들어져요. 해남에 막 도착한 사람이 점점 마음을 비워가는 과정이, 별다른 설명 없이도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거죠. 컬러 시스템도 같은 원칙을 따랐어요. 모든 컬러는 해남에 실재하는 것에서 추출한다. 해남 바다, 해남 하늘, 자연, 노을, 깊은 노을. 색 이름이 아니라 '해남의 무엇'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컬러를 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해남의 특정 장면과 연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Chapter 3. 브랜드 경험과 확장성
로고와 컬러 시스템이 완성된 다음에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어요. 해남에 도착한 사람이 그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모든 접점에서 '비움'이라는 정서가 일관되게 흘러야 했거든요. BX 설계가 왜 브랜딩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계인지 더 알고 싶다면, 우리는 어떤 BX 디자인을 해야할까? 를 함께 읽어보세요.
Q. 브랜드 경험(BX)은 어떻게 설계했나요?
해멍에게 브랜드 경험은 단순한 응용 디자인이 아니에요. 해남이라는 지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모든 접점에서 '비움'이라는 정서가 일관되게 흘러야 한다. 이게 해멍 BX 설계의 핵심 원칙이었어요.
디블러는 응용 매체의 폭을 굉장히 넓게 잡았어요. 포스터, 가로등 깃발, 토트백, 손풍기, 손목 밴드, 굿즈 보틀, 비치 체어, 스태프 카드, 티셔츠, SNS 콘텐츠까지. 이 모든 매체에 대한 응용 디자인 시안을 함께 제작했어요.
굿즈도 단순한 로고 부착 상품이 아니었어요. 손목 밴드는 행사 기간과 캐치프레이즈를 담아 '멍때림 입장권' 같은 느낌을 줬고, 굿즈 보틀에는 키비주얼의 블러 그라데이션을 그대로 가져와 해남 바다의 색을 손에 쥐고 다닐 수 있게 했어요. 비치 체어는 한 면을 통째로 노을 컬러로 채워, 거기 앉으면 자연스럽게 노을 풍경의 일부가 되는 구성이었죠. 모든 굿즈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시간'을 환기하는 매개로 작동하도록 설계한 거예요.
Q. 깃발 브랜드로서 확장성은 어떻게 고려했나요?
이번 작업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깃발 브랜드로서의 확장성이었어요. 해멍 프로젝트는 한 시즌 운영하고 끝나는 이벤트 브랜드가 아니에요. 해남DMO가 앞으로 '해' 시리즈로 확장해나갈 모(母)브랜드의 첫 번째 깃발이거든요. 지금 해멍에서 만들어둔 디자인 시스템이 후속 브랜드들의 토대가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해멍 고유의 자산'과 '시리즈 공유 자산'을 의식적으로 구분해서 설계 했어요.
해멍만의 자산은 'ㅁ' 안의 빈 공간이에요. 멍때리기라는 행위에서 직접 나온 디자인이라, 다른 '해' 시리즈 브랜드에는 적용되지 않을 거예요. 반면 해남의 자연에서 추출한 다섯 가지 컬러 시스템과 3단계 블러 키비주얼 구조는 시리즈 전체로 확장 가능한 자산이에요. 다음 '해' 브랜드가 나왔을 때 컬러 팔레트와 키비주얼 시스템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로고 디테일만 바꾸면, 시리즈로서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죠.
또 하나 신경 쓴 부분은 현장 운영의 편의성이었어요. 해멍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사업이에요. 디자인 가이드가 아무리 잘 만들어져 있어도, 현장 담당자가 직접 활용할 수 없으면 책상 서랍 속에서 잠들고 마거든요. 그래서 텍스트만 갈아끼우면 즉시 쓸 수 있는 SNS 템플릿과 세 가지 톤의 포스터를 미리 준비했어요. 시스템이 운영을 견뎌야 한다는 게, 디블러가 모든 BX 설계에서 지키는 원칙이에요.
Outro. 해멍 프로젝트에서 배운 것
Q. 이번 로컬 브랜딩 작업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해멍 프로젝트를 작업하면서 디블러가 가장 깊이 마주한 질문은 이거였어요. 디자인이 무언가를 채우기만 하는 작업일까. 비워내는 일도 디자인의 영역일까. 시장에는 '더 많이, 더 화려하게, 더 자극적으로'가 넘쳐나요. 더 많은 메시지, 더 많은 컬러, 더 많은 디테일을 욱여넣는다고 강한 브랜드가 되는 건 아닌데도, 많은 브랜드들이 비움을 두려워해요. 빈 공간이 곧 무능력으로 보일까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무책임으로 보일까봐요.
해멍은 그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선 브랜드였어요. 'ㅁ' 안에 길게 늘인 빈 사각형 하나가, 어떤 화려한 그래픽보다도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것. 비움이 곧 가장 적극적인 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해멍은 직접 보여줬어요. 이번 프로젝트가 디블러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은 이거예요. "브랜드의 정체성은 무엇을 추가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빼는가에서 결정된다." 해멍은 SNS에 올릴 액티비티를 약속하지 않아요. 화려한 인스타 스팟도 약속하지 않고요. 약속하는 건 단 하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에요. 약속의 폭을 좁힐수록, 브랜드의 정체성은 오히려 또렷해지더라고요.
클라이언트의 시장 통찰력도 인상 깊었어요. 해남의 자연 자원이 풍부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그 자원이 '비움'이라는 정서적 가치로 번역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본 건 분명한 안목이었거든요. 디블러의 역할은 그 통찰을 시각 언어로 정직하게 옮기는 일이었어요. 좋은 로컬 브랜딩은 결국 클라이언트의 깊은 사유와 디자이너의 시각적 번역력이 만나는 자리라는 걸, 이번 프로젝트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해남의 끝에 도착한 누군가가, 가로등 깃발의 빈 사각형을 발견하고 잠시 미소 짓는 순간. 손목 밴드의 작은 로고를 내려다보며 "나 지금 정말 멍때려도 되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그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한 사람의 하루가 진짜로 비워지는 경험이 되기를 디블러는 바라요.
FAQ
Q. 로컬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지역의 자연 자원이나 역사적 자산을 '정서적 가치'로 번역하는 것이에요. 자원을 직접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그 자원이 사람에게 주는 경험을 브랜드 언어로 만들어야 방문할 이유가 생기거든요.
Q. 브랜드 정체성을 로고 하나에 담을 수 있나요?
가능해요. 해멍 프로젝트처럼 'ㅁ' 안의 빈 공간 하나로 브랜드의 핵심 철학인 '비움'을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어설픈 메타포가 아니라,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직관적인 시각 언어예요.
Q. 공공 브랜딩이 일반 상업 브랜딩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현장 운영의 편의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해요. 디자인 전문가 없이도 담당자가 텍스트만 교체해서 바로 쓸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하지 않으면, 아무리 완성도 높은 가이드라도 실제 현장에서 활용되기 어려워요.